«시리얼즈 Serials»


2021.12.17 - 2021.12.31

장소: 레인보우큐브 갤러리
(서울 마포구 합정동 91-27)


참여작가: 강정인, 김나현, 김다정, 김라임, 김성혜, 김소연, 김소정, 김슬기, 김아해, 김유진, 김은정, 김은주, 김의선, 김재유, 김진희, 무일, 민백, 박새한, 서혜연, 손수민, 수연, 신하라, 안다혜, 안솔지, 안진선, 양하, 엄정원, 오연진, 오지은, 유숙형, 유지영, 유하나, 윤나리, 윤미원, 윤연, 이강선, 이경민, 이고은, 이나하, 이도현, 이미솔, 이미지, 이산오, 이서윤, 이승연, 이정빈, 이주영, 이지혜, 임성희, 임유정, 임희재, 장경린, 장미영, 전다화, 전영주, 정아사란, 정이본, 정이지, 정지원, 최가영, 최민혜, 최지원, 최희정, 파라나, 하다현, 홍예준, 홍자영, 황연진, 황인서
글: 김재연, 박지형, 송윤지, 이수영, 전민지, 정윤선
기획.코디네이팅: 유지영, 임유정, 하다현, 홍예준
디자인: 오연진
촬영: 고정균
주관: 루이즈 더 우먼






** 《시리얼즈 Serials》 전시 서문은 다음과 같은 규칙에 따라 LTW 큐레이토리얼 멤버 6인(김재연, 송윤지, 박지형, 이수영, 전민지, 정윤선)이 함께 작성하였습니다.
1. 큐레이토리얼 멤버 6명은 《시리얼즈 Serials》의 출품작을 참고하여 몇 가지 키워드를 나열한다.
2. 키워드를 바탕으로 서로 이어지는 6개의 문장을 만든다.
3. 문장 6개를 랜덤으로 배정하고, 해당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한 단락씩 작성한다.
4. 6절로 구성된 글이 하나로 꿰어지며, 각 단락의 첫 문장을 이어도 하나의 글이 된다.



원석은 아직 가공을 거치지 않은 상태의 돌을 뜻하며,
이는 곧 미래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

아직 가공을 거치지 않은 날것의 돌들이 여럿 놓여있다. 어떤 것은 조금 더 작고 어떤 것은 조금 더 거칠어 보인다. 원석의 본질은 항상성을 유지할지언정, 그 외적인 상태는 각자가 받아들이는 힘의 방향에 따라 상이하게 발현될 수 있다. 따라서 원석은 오늘보다는 내일의 모습을 기대하게끔 한다. 만약 여기 모인 작가들의 세계가 이 미완의 대상과 유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루이즈 더 우먼의 두 번째 기획전인 《시리얼즈 Serials》는 모두 미래형 시제를 전제로 쓰여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본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지금 현재 서로가 가진 모습을 꼼꼼히 살피고 어루만진다. 이는 언젠가 가공될 최초의 에너지를 생산하고 지켜내기 위함이며, 무엇보다 가능성을 가진 여러 별 사이의 길을 튼튼하게 지어놓기 위함이다. 우리는 불순물을 하나씩 걷어내며 자기 모습을 찾아가는 작은 존재들의 삶을 찬찬히 살피면서도, 이들이 함께 있어 만들 수 있는 풍경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박지형


잔잔했던 호수 위로 던져진 물수제비는 크고 작은 파동을 일으킨다.

호수는 아름다웠으나 그 잔잔한 수면 아래 갇혀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물수제비는 그런 이들의 오랜 염원이 모여 일어난 현상이었다. 한 명, 두 명 힘을 합하고 용기를 낸 덕이었다. 던져진 용기의 형태는 다양했다. 크고 무거워 금방 가라앉기도 하는 한편, 매끈하여 몇 번이고 수면을 스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미동도 없던 고요한 호수는 이따금 표면이 흔들리는 것을 감내해야 했다. 누군가의 용기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파동의 흔적은 금방 사라져도 호수의 표면이 흐트러지는 것을 목격한 이들의 마음이 크게 부푸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를 찾아서 모이게 되었다. 그들은 바로 ‘우리’다. ‘우리’가 던진 물수제비의 수는 아직 적을지도 모른다. 호수의 잔잔함을 이기기엔 부족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용기는 용기를 부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우리’는 쉴 틈 없이 쇄도해오는 용기의 덩어리들이 내리는, 호수가 잠잠할 틈조차 내어주지 않는 순간을 향해 함께 움직이고 있다.

이수영


통통 튀어 오르는 돌이 남기고 간 잔물결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겹치고 모여 일렁이는 파도를 이룬다.

하나의 돌이 처음 남긴 파동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고요했던 호수의 표면은 이 작은 움직임을 기점으로 요동칠 준비를 시작한다. 여기 《시리얼즈 Serials》에 모인 작가들은 각자 다른 모양새를 가진 돌이다. 이들이 모여 어떤 물결을 일으키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우선 한 명의 작가가 만들어내는 작은 물결에 집중해본다. 개개인이 만든 파동은 하나의 점에서 시작한다. 한 점을 중심으로 퍼지는 물결은 여러 겹의 동심원을 그리며 아주 천천히 그 범위를 넓혀간다. 이 과정에서 원은 다른 돌이 만든 원과 교집합을 가지며 더 큰 원을 형성하기도 하고, 서로 먼 곳에 있는 원들은 또 다른 돌이 남긴 원을 사이에 두고 점차 만나며 크기를 키우기도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개인의 움직임은 다른 이의 움직임과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로 연결되듯이, 전시는 각자의 미약한 물결을 모으고 연결해 큰 파도를 만들고자 한다.

김재연


파도의 흐름이 유동적이듯, 루이즈 더 우먼은 유연한 커뮤니티를 꿈꾼다.

그리고 그 끝에는 공생하는 미래가 있다. 우리 각자가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오늘의 이야기가 우리의 미래를 만들 것이다. 루이즈 더 우먼에서는 그런 오늘을 나눈다. 이들은 자신의 작품을 내보이고 타인의 작업을 들여다보며 서로의 매일을 응원한다. 이는 삶의 연속성과 작업의 지속성을 공존하게 하는 노력이며, 각자에게 또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다. 1기 멤버들이 주축이 된 첫 번째 단체전 《오늘들》에서 상호 간의 연대를 다졌다면, 이번 두 번째 단체전 《시리얼즈 Serials》는 참여작가들의 연속적인 서사를 보이는 데 주력했다. 파트 1에서는 평면, 입체 위주의 실물 작품을, 파트 2에서는 영상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어서 파트 3에는 드로잉, 에스키스, 작품 사진, 영상 스틸컷 등의 인쇄물이 전시된다. 회화, 설치, 영상 등의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에 선행하거나 뒤따르는 인쇄물을 함께 전시해 마치 작업실을 엿보듯 작업 과정을 연쇄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파트 4에는 전시에 참여한 69명의 작가를 더욱 면밀히 이해할 수 있는 아카이빙 섹션도 준비돼 있다. 본 전시는 그 자체로 루이즈 더 우먼의 ‘오늘’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송윤지


‘우리’는 하나의 그룹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루이즈’는 이 단체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이름이 될 수 있다. ‘루이즈’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 속한 인물의 이름이 될 수도 있다. ‘ "루이즈"는 다수이자 개인의 이름이며, 여성의 이름인 동시에 청자가 속한 맥락과 환경에 따라 특정 인물을 환기하는 이름’*이다. 당신과 나는 각자 자기만의 서사로 ‘루이즈’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름은 드넓은 대지에도 북적거리는 광장에도 좁은 가장자리에도 가닿아, 또 다른 이의 경험과 만나 증폭의 가능성으로 함께하여 ‘우리’의 범위를 넓힐 것이다. 루이즈 더 우먼은 하나의 단체를 넘어서 용감한 개인의 목소리로, 다수의 힘 있는 실천으로 당신과 함께할 것이다. 우리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면서도 ‘루이즈’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공존할 때,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고, 거기에 무게를 더할 수도 있으며, 말하거나 듣지 않아도 서로의 경험에 공감할 수 있다. 당신과 내가 여기에 함께 속하기 때문에 루이즈의 목소리는 더 큰 파장이 될 수 있다. 우리의 Serials는 이렇게 시작한다.
* Louise the Women, "루이즈 더 우먼의 시작을 알리며", 인스타그램, 2020.08.09, 2쪽https://www.instagram.com/p/CDtA5quJCIj/?ut m_source=ig_web_copy_link

정윤선


짧지만 단단한 선과 점이 한없이 쌓이고,
겹겹이 뭉쳐져 매듭을 견고하게 이루는 실이 된다.

바로 이곳에서 각기 다른 밀도의 시간에 자리하던 나지막한 마음들이 애틋한 장력을 만들어낸다. 그저 한 줄의 실로만 존재하던 이들은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을 견주고 공유하며, 마침내 지리멸렬한 사건 사고 너머로 번져 나가는 용기를 만끽한다. 이처럼 노곤하게 앉을 수 있는 기반 위에서 다정한 연대가 이루어질 때, 아름답지만 유약하지는 않은 세계가 구축된다. 우리는 이로부터 태동과 주파를 동시에 경험한다. 망연한 얼굴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일들이 어디로 떠나버렸는지 궁금해하는 대신, 더는 무용하지 않을 공동의 미래를 그리며 달린다. 함께함으로써 시작된 우리의 장구한 역사는 이미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그 아득한 이야기에는 끝맺음이 존재하지 않기에, 이곳의 작은 매듭들 또한 결코 매듭지어지지 않는다. 기울어버린 계절에도 망설이지 않는 발걸음은 그렇게 모든 이들을 향하고 있다.

전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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